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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시화/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by 두목의진심 201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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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수많은 책들 앞에서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아빠, 어떤 시인 좋아해?"라고 묻던 작년과는 다르게 두 달 가까이 소원해진 아빠의 생일에 어떤 책을 살지 묻지도 못하고 혼자서 책들 사이를 기웃거렸을 딸아이의 마음이 담긴 그런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선물로 받았다. <접시꽃 당신>으로 기억되는 절절하고 아름다운 그의 시어는 내 청춘을 마르지 않게 해줬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시를 읽었다. 아니 일용할 양식인 양 두 번, 세 번 꼭꼭 씹었다. 

시는 말로 만들어진 그림인데 나는 그 그림을 설명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p7


시인은 "시는 절절하지 않으면, 가슴을 후벼파는 것이 아니면, 울컥 치솟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 담겨 있지 않으면, 간절한 사랑과 아픈 소망이 아니면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한다. 나 역시 시는 아픔이 담겨야 더 아프고, 절절한 사랑 노래여야 애절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세월에 감정이 버석거려 그런 건지 절절하거나 가슴을 후벼파진 않는다.

다만 아내를 잃은 헛헛한 마음이, 자연 속에 발견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담담히 담겨 있다. 이런 시인이 고르고 고른 61편과 그와 어울려지는 송필용 화백의 그림을 함께 담았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던 절절한 사랑이 아니라 뜨거운 감정을 쏟아내는 그런 시가 아니라 아쉬운 건지 모르겠다. 매일이 고통스러울 순 없겠지만 많은 날들이 그러하기에 오늘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만나는 밤에는 왠지 감정이 말랑해져 시인의 말에 푹 젖는다.

 

상선암에서 -도종환-


차가운 하늘을 한없이 날아와
결국은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흙 한톨 없고 물 한방울 없는 곳에 
생명의 실핏줄을 벋어내릴 때의 그 아득함처럼 
우리도 끝없이 아득하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위 틈새로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어세운 
나무들의 모습을 보라

벼랑끝에서도 희망은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희망은 있는 것이다 
불빛은 아득하고 
하늘과 땅이 뒤엉킨 채 어둠에 덮여 
우리 서 있는 곳에서 불빛까지의 거리 막막하기만 하여도 
어둠보다 더 고통스러이 눈을 뜨고 
어둠보다 더 깊은 걸음으로 가는 동안 
길은 어디에라도 있는 것이다
가장 험한 곳에 목숨을 던져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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