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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에세이] 왜냐고 묻지 않는 삶 :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떤 철학자의 영적 순례

by 두목의진심 2016.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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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왜?"라는 질문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인생의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를 때도, 지금 서있는 자리가 낯설 때도 뭐하나 선뜻 결정하지 못해 주춤거릴 때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왜?"라는 질문은 딱히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해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의 위로랄까. 혼자 짊어져야 할 삶의 질문은 언제나 그렇다. 이런 지금보다 나은 삶의 지표를 찾는 첫 번째 노력일 수 있는 "왜?"라는 질문을 묻는 것조차 욕심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를 만났다. 스위스 태생의 알렉상드르 졸리앙이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뇌병변 장애인이다. 게다가 철학자이자 구도자이다. 유럽에서는 꽤나 유명한 강연자이기도 하다는데 그런 그가 지금 한국에 있다. 슬그머니 "왜?"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몸도 불편한 장애인이 그것도 아내와 두 딸에 아들까지 모두 데리고 낯선 이국땅에서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구도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다큐에서 그를 보고 그가 궁금했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조건없이 달려와 준 한국인 남자와 티없이 맑게 웃는 그를 말이다. 몸도 불편하고 말도 어눌한, 그런 그가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이라는 책을 펴냈다길래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싶고 어찌 살면서 왜냐고 묻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다. 책을 읽어 나가며 자신은 장애인이라고 무심히 툭툭 던지는 그를 만난다. 분명 다르지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의 삶의 철학이 담담히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나 역시 움직이기 쉽지 않은 몸뚱어리를 질질끌며 살지만 그와는 다르게 나는 "왜?"라는 질문을, 삶의 이정표를 찾아 늘 되물으며 살아 간다.


"내려 놓는 삶"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예수든 부처든 그에게 참 많은 걸 주셨다는 생각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정진해야 하는 구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 이 머나 먼 타국까지 날아 온 것을 보면 그의 삶에서 "왜?"라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범인인 나에게는 여전히 삶은 미궁 속 "왜?"라는 질문으로 가득차 있음으로 "내려놓는 삶"이란 터무니없는 호기요 사치다. 그럼에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내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천천히 느리게 삶을 조망하고 무의미하던 유의미하던 마구 쏟아내는 말보다는 깊은 심연의 느낌으로 침묵이 필요함에 공감하게 만든다. 일장연설로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고 따뜻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치솟지만 여전히 "왜?"라는 질문이 생각을 짖눌러 버렸다.

"상실은 무엇보다 정신의 산물이다. 가령 내가 힘들어 죽겠어도 온 세상이 나와 같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핍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비교다." -p34 <우리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단지 꼼꼼하게 발을 내디뎌가며 걷는 것. 버티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것." -p54 <한걸음 한걸음>

"신은 말한다, 나는 잠자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불안에 시달리고 신열로 들끓는 자를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신은 말한다, 나는 매일 밤 사람들이 자기 성찰을 하기 바란다. 그것은 분명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그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하루가 이미 끝난 시간이다. 다시 손질할 수도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다. 친구여, 간단한 문제다. 너희에게 괴로움으로 남은 그 모든 죄들, 그것은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을 때 저지르지 말았어야 한 죄들이다. 지금은 이미 끝났다. 그러니 어서 자라! 내일,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된다. 신은 말한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날 무얼 할까 계획 세우는 자를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p88 <내일을 위한 계획>

"실은 늘 자각하고 있는 위험이 있는데, 끊임없이 그게 나를 지치게 한다. 바로 멈출 줄 모른다는 것. 왜냐고 묻지 않고서는 삶을 즐기질 못한다는 것." -p220 <단순한 즐거움의 축제>

"침묵하기로 다짐하는 것은 억지로 자신을 닫아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입을 다물고 세상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 -p267 <세상의 소리>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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