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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배신하지 않는 것은 월급뿐이야

by 두목의진심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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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시작부터 보스를 향해 아부성 강한 멘트를 날리며 자신 같은 사람도 있다고 이토록 강렬하게 어필하는 생계형 직장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잠시 고민됐다.

 

제목을 보고 그의 직장 생활에선 유토피아스러운 이유가 가득할 것 같았다. 나와 다른 세계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란, 뭐 월급의 배신 따위를 운운할 정도니 도긴개긴이긴 하겠지만 여하튼 직장은 나를 갉아내야만 살아남는 곳이라는 절박함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인 내게는 무척 호기심을 부추기는 부류는 분명하다. 나와 다른 부류지만 희한하게 공감된다.

 

"지금 내 길에서만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가장 '잘 ' '알'고 있으니 조언은 사절이다." 40쪽

 

촌철살인이란 말이 적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싶을 정도로 표현이 강렬하다. 뚜러펑을 들이부어 변기를 뚫을 때처럼 시원하고 청량감이 넘치긴 하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빌런의 모습에서 이래저래 자유로울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찝찌름하다.

 

 

직장사 고단함이 대놓고 드러나진 않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하고 버라이어티 한 관계의 농도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좋은 동료든 상사든 사랑은 하되 늘 함께 할 수 있거나 함께 시간을 공유할 지속 가능한 가치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그을 정도로 작가는 명쾌하게 정리한다.

 

'남이 싸질러 놓은 똥', '단언컨대 조직에는 몸과 마음을 갈아 바쳐 헌신하고 지켜야 할 가치 있는 일 같은 건 없다.'라는 말에 가슴이 이다지 쿵쿵거리는지 매일, 매시간 그렇게 살고 있는듯한 내 월급이 초라해진 느낌이 들었다. 난 잔다르크도 아닌데도 그럴진대, 정작 잔다르크류의 그런 사람이라면 이래저래 버티기 얼마나 힘들지 가늠도 안 된다. 분명 오지랖과는 결이 다르다.

 

 

작가도 책도 볼매다. 그저 기계처럼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주머니를 사랑하자라는 줄 알았더니 조직의 평화를 위해 팔은 남이 걷게 만들고, 그딴 건 관리자나 중간관리자도 안 하니까 자신은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할 일만 제대로 하면서 월급을 사랑하자라는 태도의 가르침을 전수한다. 슬기로운 회사 생활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그러는 한편 무례하거나 책임감 없는 사람은 물론이고 보스조차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온기라곤 1도 없는 말투로 서슴없이 충고할 정도로 강단 있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참 마음에 들고 매력적이다.

 

 

"성공과 실패는 먼 훗날 모든 파티가 다 끝난 다음, 회고하는 사람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토록 열린 결말로 가득한 세계에서 나는 미래에 어떤 모습을 성공으로 평가할까?" 118쪽

 

성공을 담보로 하는 자기계발서들이 열에 아홉은 경제력, 권력, 명예를 공식처럼 다룬다. 정작 리더나 지도층이 갖춰야 할 인성은 빼고 영향력만 지표로 내세우는 통에 성공해야 한다는 말만으로도 경기가 날 정돈데 미래를 '열린 결말'로 생각의 전환을 해낸다. 은퇴를 입에 오르내리는 시기인데도 나는 여전히 평직원이라서 성공은커녕 쪽이나 팔리지 않으면 다행인데 작가의 말에 어떤 장르로 결말을 내볼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예전 중간관리자에게 착한 아이 신드롬에 허우적대지 말라고 쏘아붙였던 적이 있다.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일을 주워다 벌리기만 하고 그 팀원들은 땜질하느라 에너지란 에너지를 다 방전시키곤 했다. 그러다 뒷담화도 하고 질책도 했지만 결국 나몰라라 하면서 평화로운 직장 생활 구현 스킬로 역량 강화하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뭐 직장은 내게 여전히 유토피아는 될 수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딱 월급만큼은 행복할 수 있는 곳이기에 나의 하루는 상하좌우에 널린 빌런들을 무찌르려 애쓰기보다는 그들의 촉수가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웅크리는 현명함을 키우는 중이다.

 

뒤통수를 힘껏 맞은 것처럼 멍해져 곱씹은 문장이 있다. 회사가 너무 싫을 땐 쉬거나 때려치우는 게 아니라 '싫은 걸 끌어안는 선택'을 하라는 말이다. 싫은 것으로 더 싫어지는 것들이 잠식당할 때, 그때 그게 적이든 일이든 관계없이 싫은 것을 선택할 때 에너지가 바뀌고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솔직히 아직 선뜻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 조언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때려치울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속을 끓이는 것보다 괜찮은 선택지일지 모르겠다. 적과 동침하라는 것도 아니니.

 

 

"확정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스(오너)라고 한다. 확고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리더라고 한다." 153쪽

 

자, 당신은 누구와 일하는가? 다시 봐도 기막힌 설명이다. 우리에겐 리더가 필요하지만 보통은 보스만 나타난다. 그것도 빌런이면 답도 없는데 말이다. 한편 보스 평가와는 다르게 사회 기술에서 조직 협력이 어떤 의미인지 깊게 깨달음을 전한다. 분명 그렇다. 조직이든 사회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책은 작가의 자아성찰이 풍부하게 담긴 일기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빌런이 주는 하루 고된 일과 끝에 방언처럼 터져 나오는 욕과 신세 한탄으로 점철된 게 아니라 조직에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렇게 질문을 바꿔 성찰하니 회사가 작은 사회가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레벨 업 되는 순간을 월급만큼이나 기뻐할 줄 아는, 그런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같은 키나발루에 있었음에도, 나는 적어도 '철학적 자살'같은 타협점을 명상할 깜냥이 되지 않으니 꼴랑 책을 읽었다고 회사에 속지 않고 즐겁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다. 다만 그저 오늘 하루는 기필코 무사하고 싶을 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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