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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심리/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by 두목의진심 2017.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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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보노보노가 주는 메시지에 흠뻑 빠졌더랬는데 이번에 빨강머리 앤이 주는 메시지에 흠뻑 빠졌다. 산다는 건 확실히 '관계'에 목말라하고 지쳐하고 고민하고 상처받게 되는 일이다. 특히나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면 지금 그 관계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그런 마음을 흘러넘치게 만들어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준다.

 

"누구에게나 '빨간 머리'가 존재한다." 23, 우연을 기다리는 힘

어린 시절, 빨강머리 앤을 보며 자란 세대이면서도 앤의 그토록 빨갛던 머리가 '콤플렉스'였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그런 남들과 다른 '특징'이 콤플렉스로 여겨지면서 우리는 주눅 들거나 위축되고 때로는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빨강 머리든 작은 키든 두터운 안경이든 뚱뚱한 몸이든 휠체어 같은 거 말이다. 근데 사실 이런 남들과 다른 특징들은 말 그대로 '특별 Special'하다고 할 수 있는 건데 말이다. 그런 것들은 저자의 말처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별것 아닐 수 있지 않을까. '다름'이 별것 아닌 그저 '같음'으로 여겨지는 거 말이다.

 

44쪽의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식 처방전을 읽다가 "적당한 결핍은 쾌락은 증폭시킨다."라는 글귀를 보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뭐든 꽉 채우려고 아둥바둥하다 오히려 많은 걸 놓치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쾌락이 불 꺼진 뒤 즐기는 유흥이 아닌 건전한 즐거움으로 여긴다면 말이다.

 

"어차피 사는 건 상처를, 굴욕을, 멀어지는 꿈을 감당해내는 일이다." 97, 사랑에 빠진다면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잘 안 되는 거다. 중요한 건 실수를 자기 몫으로 감당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만 하는 특이한 실수가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되기도 하니까. 못하는 걸 잘하려고 자책하며 노력하는 일보다, 잘하는 걸 조금 더 잘할 수 있게 정성을 쏟는 일이 어쩌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152, 넌 내일도 실수를 저지를걸?

 

저자가 '꿈'에 대한 이야기 중에 가슴에 남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닌 185쪽,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나오는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삶을 존중하지만, 이제는 버티고 견디는 삶을 더 존경한다."라는 구절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견디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좋은 걸까? 좋기나 하긴 할까? 꿈이란 게 '나'를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한 것이어도 좋기는 하겠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몰린 것처럼 힘겨운데 견디고만 있다면? 그런 삶은 엉망이 되지 않을까. 나는 견디는 것보다 버리고 떠나는 삶이 어쩌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산다는 건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는 법이니까.

 

 

"인생의 목표를 행복에 맞추면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지기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행복은 완결된 감정이 아니다." 162,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다들 행복해지기 위해, 그런 행복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 딱 하나의 목표를 성공으로 붙잡아 두는 편이다. 행복해야 성공한 게 아니라 성공해야 행복해진다고 여기는 사람들. 요즘 내 심금을 울리는 박원의 All of My Life 노래 가사에 "꿈이 생기고 네가 가진 꿈도 이뤄주고 싶었어. 나 그러려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만 했어. 더 많은 것들을 가져야 가능했어. 다 가질 때쯤 사랑보다 꿈이 더 커졌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와 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는데 성공하고 돌아보니 사랑은 없더라는.

 

저자는 그런 행복하기 위한 삶보다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삶이 어쩌면 나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공감한다. 행복의 기준이 저마다 다를 텐데 세상이 만드는 행복은 대부분 비슷하니 누구는 쫓기만 하다 가랑이만 찢어지고 끝나는 게 아닐까.

 

이 책은 비단 앤의 수다스러움이나 가슴을 쓸어내리는 대사와 얽힌 일상도 좋지만 삶의 지혜랄까? 군데군데 보이는 저자의 철학이 스며있어 더 감칠맛 난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라는 충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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