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부터 물러시지 않아야 할까, 잠시 생각하고 읽게 된다. 콘텐츠를 파는 서비스 기획자인데 철학을 공부했다니 왠지 그게 더 철학적이다. 이런 저자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삶을 치열하게 고뇌한 26명의 철학자로부터 삶을 지탱하는 태도를 끄집어 내 전하는데 프롤로그만으로도 울컥 용기 내고 싶어졌다. 늘상이 타협인 내 삶이 순간 느려졌달까.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공평하고, 그 불공평을 어떤 자세로 타고 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니체와 어디에나 있는 친절한 탈을 쓴 빌런들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공통의 언어에는 블랙 스완을 찾는 마음으로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포퍼, 인간의 본질이 의지인 욕망에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절름발이를 어깨에 메고 가는 장님, 의 인용에 장님을 시각장애인이란 표현이 맞지만 맥락상 그리하겠다는 설명은 칭찬할만 한데 이왕이면 절름발이 역시 지체장애인으로 표현하는 게 좋겠다는, 지적에 가까운 조언을 하고 싶은 욕망을 나 또한 참지 못했다.
그리고 이왕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면, 내지에 밝은 녹색 활자는 디자이너의 욕망이었을까, 독서를 방해할 정도다. 어쨌거나 삶은 고통이고 모든 욕망의 사슬을 끊을 수 없다면 심미적 관조 상태를 노력하는 욕망도 괜찮으려나.
또 욜로와 파이어족으로 양분하는 쾌락에 대해 등장하는 에피쿠르스는 욜로보다는 파이어쪽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당장의 짧고 강렬한 쾌락은 오랜 기간 고통을 받을 바엔 당장의 즐거움을 유예하는 게 좋다고 했다니 말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열심히 사느냐, 고 묻다니. 가뜩이나 사는 게 지옥인데 거기다 뭘 더 얹는 건지. 물으니 대답해 보려 애쓰다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으니 태어난 김에 살아보고, 사는 김에 잘 살아 보려고 그런다, 고 하면 잘 사는 게 뭐냐고 물으려나? 하여 너는 존재 하는가, 라고 하이데거가 묻는 듯하다. 철학 책을 읽는다고 그런지 나도 무슨 물을 하는지 헷갈리는 중이다.
저자의 짝꿍이 되물었다던 "너는 왜 이런 수많은 일을 행복해하지 않냐" 라는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 내게 들이닥쳐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하루에도 백만스물한가지의 불행 밖에 안 보이는데. 제논의 말처럼 노력과 실천으로 얻는 행복은 좀 어렵지 않을까? 그나저나 저자의 말처럼 행복이 그저 얻어걸리는 게 아닌 이상 내 수준에 맞는 행복부터 찾는 게 급선무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선택의 영광을 누릴 가능성보다 선택하지 않은 무언가를 후회할 가능성이 더 크다." 92쪽, 나는 나의 미래를 선택한다
기꺼이 선택하고, 상처받고, 아파하고 다시 선택하라, 는 샤르트르의 실존으로서의 선택은 과연 내 미래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선택과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방법이라니, 삶은 참 피곤한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게 인생이겠다, 싶다.
이렇게 순식간에, 그리고 불안정하게 변화되는 세상에 한비자의 '법술세'는 제대로 작동될까. 정치판을 보면 그도 아닌 것 같은데. 빵 하나 먹겠다고 주말 핫플레이스 거리를 막아 버린 군주는 이런 시대 변화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아닌가? 제대로 작동하면 무지한 군주도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제대로 작동해서 탈일지도. 한비자 편을 보며 생각이 참 많아진다.
그럼에도 밀의 절대 자유에 비추어 보면 빵을 먹을 자유를 항변하려나? 허면 그건 잘못된 일이라 지적질 할 자유도 있음을. 한데 그렇게 발 벗고 나서는 이가 없다. 언론은 입을 닫았고. 이렇게 가십으로 끝날 일은 이닌데 말이다. 그리고 언제 들어도 뜨끔하게 만드는 '악의 평범성'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평범할 수 없게 만드는지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정신줄을 놓지 않게 만든다. 그나저나 캄보디아는 <킬링 필드>고 인도네시아는 <액트 오브 킬링>이면 한국은 <518>인가.
어쩌면 이 책을 통틀어 단 하나의 질문을 꼽아야 한다면, 단언컨대 정의다. 아니 협력, 혹은 연대인가?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초월적 협력'을 담보한다. 한데 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소외당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에 공평한 재분배가 가능한 '무지의 장막' 상태는 현시대에 가능한지 롤스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세상에서 휘둘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르쿠스의 메시지는 다시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일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되려 대체 나는 누군가, 라는 질문에 천착한다.
이 책이 철학 입문서이고 끝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단 저자의 말에 훗 했지만, 사실 철학을 공부하는 이가 아닌 이상 독자는 여기서 해답을 찾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 않을까? 다만 철학이 주는 사유의 시간을 나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6개의 사유를 통해 내게 그런 시간을 주었고 그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여 나의 철학도 시작되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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