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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땅5

[소설] 반려동물 집사 필독서 - HUBRIS, 휴브리스 묘한 제목에 끌렸다. '나를 찾아 달'라는 부제 역시. 제목 풀이를 보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던 인간의 신을 향한 오만함으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결국 다른 대륙의 언어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스터리 소설로 제목부터 흥미롭다. 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알게 된다면? 이란 상상력으로 탄생한 통역기 같은 MLF은 흥미롭지만 줄곧 '어떤 질문을 할지'로 귀결되는 내용이나 찬반 토론의 논리의 수준은 좀 빈약하게 느껴져 살짝 김빠진다. 게다가 "불쌍한 동물들을 위해서 인간들이 좀 배려하고 노력하자"라는 유기견 3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패널로 등장하는 인물의 말은 이미 동물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오만한 시혜다. 또, 좀 더 키우기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나 말을 잘 듣게 만들려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 2024. 2. 22.
[예술]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 지우개 유혹됐다. 파우스트를 환락의 구렁텅이로 이끌었던 그 악마의 유혹과 지우개라니. 제목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나이 들고 더 이상 없어졌다 싶었던 호기심이 발동했다. 더구나 아동청소년 영어교육 드라마를 개발하는 작가 겸 프로듀서 일을 십수 년 하고, 임신과 더불어 공황장애까지 겹쳐 비자발적 전업주부가 된 작가가 고전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써낸 글이라니 놀라기도 하고. 표지도 그렇고 기억을 잃어가는 '상실'에 대한 단편을 모은 소설인 줄 알았다. 한데 2013년 한국문학예술 드라마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를 포함한 5개의 드라마 시나리오 모음집이다. 과거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때,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써보겠다고 용쓰던 기억이 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읽을 만큼 순식간에 끝을 봤.. 2023. 12. 29.
[시] 오래 만나고 싶은, 시詩계절 2 이런 작가 소개에 빙긋 미소가 절로 나는 게 비단 나뿐이 아닐 테지만 자꾸 읽게 된다.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와 닮았다니, 그의 촉촉함을 믿어 보게 된다. 시집 를 쓰고 두 번째다. 사랑, 그 감정 아니 감각은 분명 세월이 변해서 변했다. 아내가 아내가 되기 전 연인이었던 때가 있었고, 그때는 약에 취한 것처럼 하루 종일 달 뜨게 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 시간이 그러했다. 잊었던, 소멸된 세포를 그의 시가 시작부터 나를 깨우고 시간을 그때로 돌려 놓았다. 나는 지금 많이 달 뜨고 있다. 아내를 본다. 밤 파도가 밀려와요 지금 파도가 중요한가요 이렇게 그대가 밀려오는데 18쪽, 청사포 *너의 외로움을 스친 바람이 내 뺨에 닿았다, 라니 어쩜 이리 절절한 마음이 제대로 퍼지는지 모르겠.. 2023. 12. 1.
[경제경영] 창업은 일상이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만드는 평범한 청년'이라는 자기소개가 이미 평범하지 않아서 궁서체 모드로 자세를 고쳐 앉고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 역시 창업과 폐업의 슬픈 전설을 가진 터라 창업은 될 수 있으면 멀리해야 할 것인데 끌리는 이유는 뭘까. 망해 보고 나니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 부대끼면 창업이라는 카드를 꺼내 수작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성공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빛 더미에 깔리는 청년들이나 은퇴자가 더 많으니 말이다. 한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두루 경험한 퇴사 노하우를 살려 관련 플랫폼을 구상한다는 저자는 현재 김해시 창업카페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일상'에서 관심사를 찾는 것이 창업에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창업 생태계 설명.. 2022. 6. 2.
[소설/낭독리뷰]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곰치가 살아 온 세상은 늘 이랬다. 아픔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도 부질없었다. 그러는 동안 심장은 밤 껍질처럼 단단해졌다. 발목에 숨겨 놓은 잭나이프로도 그것은 베어지지 않았다." 20쪽 이상하리만치 곰치의 세상이 작가의 세상이 아닐까 싶은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지리멸렬한 삶은 아닐지 몰라도 뭔가 생기는 죽은, 어쩔 수 없는 삶 같은 곧 부서질 듯 바스락거리는 건조함이랄까. 어쩜 내 삶이 그럴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내겐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한데 아이러니 한건 음습하진 않지만 어두운 공기를 잔뜩 묻힌 짤막한 이야기들 속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단편이라 호흡도 짧게 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 전체에 밑간처럼 베여있는 '문학'이라는 양념이 작가의 또 다른 삶의 공기였.. 2021.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