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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다시 만날 때까지

by 두목의진심 2020.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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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장애에 대한 여러 시선을 활자에 담고 싶은 마음으로 '펜대'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동분서주 해왔다. 2017년엔 장애 당사자의 시선으로 1부 <행복추구권>을 세상에 냈고, 올해 바쁘게 2부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장애 가족의 시선을 담아내고 팠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순간 펜대 프로젝트에 함께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한발 늦은 아쉬움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도대체 난 무엇 때문에 장애를 활자에 담으려고 하는가"를 자문하곤 했다. 그저 사회에 관념적으로 눌어붙어 딱쟁이 같은 장애라는 인식을 다만 1cm라도 움직이고 싶다는 마음이 "위로받지 못한 마음과 그래서 더 외로워진 마음을 글로 풀어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라는 저자의 솔직한 글에 마음이 요동쳤다. 결국 느닷없는 사고로 한순간에 장애인이 된 후 관통해야 했던 장애인의 삶이 어떤지 "니들이 장애를 알아?"라며 그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어깨 띠를 매고 거리에서 편견과 차별 금지를 외치고, 캠페인을 만들고 전단지를 세상에 아무리 뿌려봐도 장애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계속되는 '장애'를 둘러싼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활자에 힘주어 꾹꾹 눌러 쓰길 바랐다. 그래서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을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각자의 목소리로 활자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하길, 또 그렇게 '펜대'가 무뎌지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은 여성이면서 장애인이고 불치병을 앓았던 딸과 함께한 '사람답게 살아보려 발버둥 친' 25년이면서 3년이었던 엄마의 삶의 기록이면서 딸에 대한 기억이다. 그저 장애인의 딸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 겪어야 할 돌봄의 피로도가 진정성 있게 그렇지만 하소연이 아닌 삶에 대한 자세가 고스란히 담겼다.

 

장애와 불치병으로 삶 자체가 힘겨운 딸을 그저 사랑스러운 딸로 포장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그 불완전한 삶 속에서 완전함으로 가려는 노력들과 함께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다양한 감정들은 많은 공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온전히 나 혼자 해내야 하는 태산 같은 일들은 나를 더욱 외로운 독립군으로 만들었다." p26

 

문장에서 와락 앞이 흐려졌다. 하루아침에 중환자실에 누워 손가락 하나 딸싹 못하는 아들을 맞닥뜨리고, 21살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하루하루 모성으로 타들어 갔을 내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숨을 쉴 수 없다. 그로부터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마에게 나는 놓을 수 없는 가혹한 존재라는 사실이 너무 미안해 죄스러워졌다.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능력이고 품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p45

 

누구나 세상은 살기 팍팍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삶을 대하는 자세도 다 같으리란 법은 없다 해도 "그 몸 나 주지"라고 간절하고 처연한 자세는 누구나 가질 수 없을지 모른다. 감히 위로조차 건네기 쉽지 않은 그의 말에서 매일매일 죽고 싶다거나 때려치우고 싶다거나 하며 힘듦을 회피만 하려는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어 지나가지 못할 절대 아픔과 시간 따라 커가는 그리움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적어도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에게는." p170

 

개인적으로 이 책에 주목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딸의 기억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가 국민으로 자유롭게 누리지 못한 부분에 대한 사회보장 권리를 찾기 위한 고단하고 지난했던 일과 반면 그런 딸의 흔적을 지우는 일에는 일사천리로 해치워버리는 막강한 행정력에 대한 노여움이기도 하다. 국가가 돌봄을 가족에게만 떠넘기고 주는 것에 대해 시혜나 배려쯤으로 포장하는 일이 얼마나 부당하고 공감이 되던지 덩달아 울컥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다른 삶에 관한 기록이자 기억이며 장애를 넘어 국가의 돌봄 시스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참 고마운 책이다. 끝으로 주제넘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재윤 씨의 명복을 함께 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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