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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여행/에세이] 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by 두목의진심 2017.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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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어, 안드라. 이제는 너무 늦었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 오늘 부모님을 단 1분이라도 다시 뵐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할 거야." 190, 깨진 유리 위를 걷는 것 같더라도

 

<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왜 굳이?"라는 생각이 스쳤고, 아빠와의 관계 회복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작과 끝이 다른 책이다.

 

마흔네 살의 뱃살이 처진 전직 회계사이자 작가인 저자가 714Km의 긴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곧 출간될 자신의 책을 알리고 싶어서 였고 이 기나긴 여정에 아빠가 필요한 건 매일 24km를 34일 동안 걸어야 하고 그런 자신의 지친 몸을 쉬게 해 줄 숙소로 이동을 도와줄 지원병을 찾다 보니 턱이 3줄로 주름지고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 만큼의 튀어나온 배를 가진 여든 살의 아빠가 필요했을 뿐이다.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간을 봤나" 싶었다. 제 소설 많이 팔겠다고 거동도 기적일 만큼 힘든 팔순의 아빠를, 그것도 사이도 좋지 않은 그런 아빠를 부려 먹다니 말이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가면 갈수록 이 노구의 왓킨스 영감님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그의 고집스럽고 염치없는 모습들에는 불편하기도 하면서 집에 계신 내 노구의 아버지가 밀려들었다. 미시시피의 뱃사람들처럼.

 

한편으로는 긴 여정의 첫발을 기념하는 게 SNS라니 역시나 SNS을 떠나서는 소통을 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34일 동안 매일 24km를 걷고 714km의 기적을 보였음에도 단 1kg도 빠지지 않은 그녀의 몸무게 역시 기적이라는 생각도 했으며 어쨌거나 마흔네 살의 뱃살 처진 저자의 여정을 응원하며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얼마 전 출간된 내 책도 팔기 위해 나도 국토횡단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우리는 늙어 기력이 없어져야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들임을 깨닫는다." 226, 나도 늙어가는 내 모습이 두렵단다.

 

늙는다는 것. 몸의 여기저기 아프다는 것. 때론 바지에 용변을 봐버리는 그런 것들의 곤란함 등이 왓킨스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제는 무릎을 잡아야만 하는 내 어머니와 이제 더 이상 야간을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의 건강이 불쑥 마음에 걸리고 여전히 아버지와의 대화에는 날을 세우고 어머니와의 대화는 잔소리로 듣는 통에 마음이 따끔거린다. 내가 늙어가는 속도보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중간중간 이 세상에서 책을 누구보다도 더 잘 파는 저자의 아빠의 편지는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 이만저만 울컥한 게 아니다. "못해서 한이 될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부모 자식, 그것도 부모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구나 만들지 말고 애정 표현을 많이 해야겠다. 부녀의 관계 개선이라는 결말이 뻔히 보이지만 그들의 여정은 뻔하지 않아 뭉클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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