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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소설] 양과 강철의 숲

by 두목의진심 2016.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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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못 해서 오히려 기뻤다."

 

양과 강철 거기에 숲이라니 이질감 잔뜩 묻어나는 단어의 조합이라니 제목을 보는 순간 뭔지 모르게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거기에 표지도 왠지 신비스럽다고 해야 할까. <양과 강철의 숲>을 읽었다. 아니 들었다가 맞을까? 피아노 아니 정확히 하자면 '조율'이다. 피아노가 단지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게 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저 멍한 삶을 살던 산 마을 소년 도무라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다름 아닌 이타 도리의 조율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숲의 소리.

 

다독을 시작한 이래로 소름 돋는 몇 권의 책이 있었다. 아마 <양과 강철의 숲>도 그런 책 중에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시작은 조그만 상자 안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고 어둡지만 왠지 포근함이 느껴지는 좁은 공간의 안락함이랄까. 말도 안 되게 좁지만 말도 안 되게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 같은.

 

어쨌거나 좀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지만 편안하게 다음이 기대가 되는 그런 냄새가 났다. 한데 책장이 넘어갈수록 정말 아득하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언어의 유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무슨 감성 넘치는 작가를 흉내 내는 것 같지만 달리 다르게 표현할 수 없다. 나 역시 도무라와 함께 그 숲 앞에 서있는 느낌이 강렬하다. 너무 깊어 깊이를 알 수 없는 숲 앞에 서 있는 느낌. 그 숲 안에서 소리가 만들어져 나무와 나무를 휘돌아 숲 밖으로 퍼져 나오는 숲의 소리. 그런 소리를 도무라는 들었을 것이다. 이타 도리의 소리를.

 

그리고 또 몇 장을 더 읽었을 뿐인데 알듯 모를 듯 숲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그 숲 앞에 멈춰 선 기분이다. 어쩜 이렇게 은은하고 적절하며 예쁜 글들을 썼을까. 실로 놀랍다. 온통 "빨리빨리"라는 말에 숨이 막힐 듯한 일상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차근차근. 차근차근. 끝이 없고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차근차근에서부터 조율사의 일은 시작된다." 22쪽

 

"아름다운 '라'는 440헤르츠다."

 

그리고 한강의 채식주의자 냄새가 났다. 왠지 모르지만. 그리고 놀랍다.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도무라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는 걸 알았다. 난 왜 도무라가 여자라고 생각했었던 걸까? 왜 그렇게 단정했을까? 다시 아득해지는 느낌이 드는 참 좋은 기분이 든다. 요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숲을 향해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고집을 부리고 싶을 때는 자신을 조금 더 믿어도 된다. 고집을 끝까지 부려도 된다. 내 안의 아이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194쪽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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