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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 삶의 통찰이 담긴 즉답, 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by 두목의진심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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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름이 낯익다. 이근후 박사야 워낙 유명 인사니 그렇고, 이서원 박사는 그의 전작 <감정 식당>을 읽었었다. 읽었다고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도 아니라 쓴 서평을 다시 읽어보니 제목과 비슷한 문장이 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란 걸 기억하면 화날 일이 반으로 줄어듭니다."라는 말인데, 역시 인생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진리인가 보다.

 

사실 운전대 하나만 잡아도 분노하게 되는 게 이놈의 세상인데, 이것도 알고 보면 운전 하나도 내 맘대로 안 되니 그런 것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의미심장한 제목처럼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대담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당장 목마른 사람에겐 물을 줘야지, 우물을 파 갈증을 해결하라고 하면 안 된다"라는 현실적이고 사이다 같은 지혜를 담았다니 마음이 조급해질 정도다. 얼른 잠수함에 승선한다.

 

이 책은 두 정신건강의가 자존, 관계, 위기, 욕망, 확신, 비움, 성장, 행복의 8가지 주제로 110가지의 짧은 대담으로 삶의 통찰을 전한다.

 

27쪽, 열등감이 생기는 이유

 

뇌는 있는데 내가 없거나, 시험을 망친 자식보다 더 많이 운다는 한국의 엄빠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시작부터 큭 하고 웃었다. 큰소리로 웃자니 나도 그러고 있는 편이라서 그러기엔 양심이 좀 찔리고. 한국에 살면 어차피 다 그렇게 되나 보다.

 

웃다가 어제 아들 녀석이 학원 쪽지시험을 다 맞았다고 으스댔던 일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중간고사 성적을 보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아예 딴에는 아빠에게 칭찬받고 싶었나 보다. 워낙 칭찬에 인색한 아빠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가 칭찬해 줄 타이밍을 놓쳤다. 미안했지만 모른체했다. 그런데 생활 자체가 경쟁인 아이들에게 그 기준인 등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한 건 아닐까?

 

'획일적 평등주의'라는 단어가 눈에 꽂혔다. 물론 짧은 글에서 저자들이 하고자 하는 말의 진위를 다 헤아릴 수 없다지만, 저자가 말하는 평등에 대해 나와 너는 같지 않음을 같다고 여기는 것,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능력을 가치로 추구하는 세상에선 능력과 역할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라는 그의 말에 애초에 능력이 열악한 사람들은 늘 열등한 대접만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건지 묻고 싶다. 능력이 없으면 배려나 시혜의 삶이 최선이 되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의 약점을 보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나의 약점을 보는 일이다." 101쪽, 외면하고 싶은 진실

 

132쪽, 갑질은 어디에서 오는가

 

특히나 갑질 천국인 한국에서 정작 갑질이 지질함에서 온다니 은근 쾌감이 있다. 진정한 우월감은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서 온다고 하니 막연하게 높은 자존감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일반적인 사회의 상식과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고, 너의 상식이 나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 상식은 시대의 산물이고 개인의 경험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155쪽, 말도 안 돼

 

상식에 대한 조언에 깨달음을 얻는다. 상식이 사회 통념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저자의 글에서 상식도 개인에 따라 온도차가 많겠구나 했다. 같은 문제를 바라봐도 나에겐 상식의 문제가 타자에겐 애초에 상식의 문제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언은 새길만하다.

 

204쪽, 진짜 만남이란 무엇인가

 

<진짜 만남>에 대해 읽으면서 불알친구가 생각났다. 동네 깨복쟁이로 만나 지내왔으니 50년 가까이 됐다. 입만 열면 나방이 쏟아져 나오는 사오정처럼 내 친구는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 쏟아내는 염세주의자다. 그렇게 친구나 타인에 대해 험담은 쏟아내도 피해 주는 일을 극도로 조심하는 친구라서 귀여운(?) 험담에 적당히 장단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 귀는 좀 피로하더라도 마음은 편해진다.

 

또, <틈새 파고들기>를 읽다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직원 교육이 생각났다. 몇 년 새 복지관에도 정신장애인 이용인이 늘어나고 있어 준비한 교육이었다. 이 자리에서 정신보건 전문가였던 강사는 화면에 뇌가 그려진 그림에 한 부분을 가리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전두엽이 탈이 날 수 있고, 대부분 정신질환자들이 그렇다면서 이 부위는 다시 좋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 약 복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신병이 생활 습관의 잘못이고, 심지어 고칠 수 있다니 저자의 이야기는 희망적일 수 있을까 싶다.

 

각 주제에 따른 지혜가 담긴 조언들을 보면서 가족, 친구, 동료와 주변 일들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가렵지만 어쩌지 못하고 애먹던 곳이 금세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예컨대, 갑자기 치통에 고통스러워 찾은 치과에서 치아가 아닌 뜻밖에 부비동 염증 때문에 그런 것이어서 치과가 아닌 이비인후과를 가야 한다는 일처럼. 고통을 고통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고 그 일로 지혜를 얻는 일로 만들라 조언한다.

 

두 사제지간 사이를 보며 부러움이 끊이질 않았다. 나야 사제지간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지만 내 관계망에서 이런 마음을 담은 지혜를 주고받을 이가 있을까 싶다. 그의 말처럼 내가 그런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삶의 통찰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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