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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사회정치] 거침없이 그리고 당당하게, 키스하는 언니들

by 두목의진심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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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라는 단어를 읽어도 의미는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산다. 매년 그들을 알리는 축제가 열리는 것을 알지만 참여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혐오하는 이들의 기사와 장면에는 눈살을 찌푸린다.

 

내가 '앨라이 Ally'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고, 각종 명칭이 헷갈리기도 했지만 여러 '섹슈얼'의 구분법도 배울 수 있어 나름 좋다. 대학원에서 소수자 인권에 대해 배울 때도 솔직히 'LGBTQ'는 타인의 '성'쯤의 영역으로 치부해 금세 잊고 말았다. 지금도 퀴어를 검색창에 넣고 있다. 정확한 의미가 뭘까 싶어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네이버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매번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부침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12명의 인터뷰이가 물꼬가 트인 것처럼 쏟아낸 많은 말에서, 저자 또한 하고 싶었던 말들을 고르고 골라 이 책에 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식의 티키타카 인터뷰집이 아니라 정제된 글이라 더 좋다.

 

'유교레즈' 혹은 좀 더 적극적 레즈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살아낸다는 현실은 가혹하리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안다. 다른 것들에 열려 있지 않은, 수 세기 동안 하얀 옷과 배달로 뭉쳐있음을 자부심으로 키워낸 사회는 다른 것들은 이물질로 치부하게끔 시스템화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사회에서 끈질긴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당차고 묵직하게 다가 온다. '끈질기게' 행복하자고 이를 악물고 다짐해야 하는 것이 실상은 당연한 것들임에도 요구해하는 일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었을까 생각하면,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차지 못할 정도로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활동가 한채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무엇이, 아니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상성인지 모르겠다. 사실 종교에서 말하는 신화적 존재들의 탄생도 다 이상한 것들이 아닌가? 알에서 나오거나 곰의 새끼로 나오거나 최초 여성은 찰흙으로 빚어지고 남성은 그 여성의 갈빗대를 뜯어서 조립된 게 정상인가?

 

아무튼 종교에서 외치는 모두를 사랑하자에는 헌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왜 포함되지 않는지 심히 계산적이라는 치사함이 격하게 느껴지는데, 이제 그런 사랑은 좀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어졌다. 종족 번식만 내세우면 우리가 동물과 뭐가 다를까. 동물을 정상성에 끼워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59쪽, '나중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어떠한 개인도 어떠한 관계도 욕구의 양상이 똑같지 않다'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공유 한다면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이 사회를 함께 통으로 흔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67쪽, '나중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뎅 소리와 함께 환청처럼 계속 울리고 있는 말이 있다. 밥 먹듯 커밍아웃 한다는 변호사 장서연의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말이다. 초등학교 이후 남중고를 나온 입장에서 그 시간을 더듬어 보면 얼핏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데 어디에서도 보이면 안 됐던 친구들에게 이제야 마음이 쓰였다. 여성스럽던 그래서 마구잡이로 놀림과 험난한 대접을 받아야 했던 친구들은 잘 살고 있을까. 부디 안녕하길 바란다.

 

그리고 줄곧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리고 불편한 또 하나는, 성 정체성을 겪는 것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 역시 같은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딸, 아들과 함께 살면서 아이들이 이성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고 딱히 그맘때 가지는 성적 호기심도 내비친 일을 본 적이 없다. 혹시? 라는 생각과 커밍아웃이라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렵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일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까 봐. 아이에게는 벅찬 일이 내게는 숨 막히는 일이 될까 봐. 평소 성소수자를 바라본 내 인식을 검열하게 된다.

 

283쪽, 고독을 벗 삼아 죽음을 마주 하라

 

그런 와중 활동가 최현숙이 던진, 국가는 계속 안 할 거고, 그럴 희망도 없지만 하염없이 그러면서 신나게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다짐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를 확인시켜 주는 말이어서 뜨거워지는 무엇이 있다. 국가가 하지 않겠다면 시민이 하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스크림이 녹기만 하는 계절에 미처 마음 준비도 못하고 읽었지만, 다가 올 모든 계절에는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으로 조금은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어줍지 않을지 몰라도 그들이 '나'로서 제법 그럴듯한 미래를 그려 나가길 응원하게 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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