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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사회정치] 못생겨 아름다운 그런 곳,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by 두목의진심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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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기대 없이 편안하게 늘어졌다가 자연스럽게 의자를 땅기고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힘이 있다. 도시, 혹은 건물 내지는 골목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읽으면 읽을 수록 도시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도 못생길수록 치열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숨 쉬고 있다는 걸.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건축가의 꿈을 접었다는, 그리고 기자로서 도시의 건축을 이야기한다는 저자가 흥미로웠다. 그가 바라 보는 서울은 건축으로든 활자로든 분명 독특할 것이라는 얼마간의 믿음이 생겼다. 세상은 잘생긴 것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으므로.

 

이름조차 생소한 '백사마을'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울시의 주거지보존사업을 "처음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전시관으로 기획한 공간과 진짜 사람이 사는 마을은 달라야 한다."라는 저자의 일침은 도시를 재개발로 포장해 한낱 볼거리로 만들어 생기를 빼앗는 것이라는 데 동의 한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중계동 언덕 백사마을에서 시작한 걸음은 종로 창신동으로 넘어 간다.

 

도시와 도시, 그 안에 골목들을 둘러보며 하느작거릴 모양새를 예상한 것과는 달리 책은 서울의 도시정비계획이나 뉴타운 계획 등 소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는 재개발을 통한 공공의 집장사를 역사와 배경,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리 등을 꽤나 디테일하게 짚어낸다.

 

심지어 헌 집을 줬는데 새 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즐비했던 도시정비사업에 얽힌, 게다가 서울 토박이라면 산증인을 자처하고 나설 만큼 할 말이 차고 넘치는 이야기겠다 싶다. 초등학교 1학년, 옥수동 산 5번지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성남시로 쫓겨난 이력이 있는 나로선 좀 더 꾹꾹 눌러 읽게 된다.

 

104쪽,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폐지 1킬로그램을 모아 봤자 100원도 받지 못하는데, 하루 50킬로그램을 수집한다 해도 5000원을 벌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한 달 내내 쉼 없이 폐지를 주워도 손에 쥐는 돈이 15만 원 안팎에 불과합니다. 도시에서 매일 쏟아지는 폐지를 줍는 노동이 계속 필요하다면, 도시에는 이 정도 소득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도 필요합니다. (...) 하물며 그런 집을 재개발로 하나씩 없애는 건 우리 스스로 도시를 지탱하는 하부 구조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입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면 정말 도시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잇습니다." 108쪽, 신림 반지하와 종로 고시원

 

저자가 지적하는, 폐지가 도시 순환의 밑바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문장에서 주거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나는 폐지 줍는 일이 도시 재생에서 어떻게 선순환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질문한다.

 

도시 이야기는 주거 문제를 지나 기본적인 복지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중계동에서 창신동으로 종로, 행당을 거쳐 다산동, 세운, 예지동, 힙지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도시에서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데 눈을 뗄 수 없고 공감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다.

 

"사람은 스무 살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출발선에 서는데, 사람이 사는 동네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생각합니다." 137쪽, 사람이 스무 살에 죽는다면

 

146쪽, 1000개의 공장이 돌아가는 곳

 

다산동 김 씨를 사례로 도시에 뿌리를 둔 동네의 의미를 정책만 들이대는 부류들에게 저자가 날리는 패러독스는 정말 사이다처럼 청량감이 가득하다. 멀쩡한 건물을 쓸어버리고 새로 짓겠다는 포부가 도시 재생을 위해서인지 개발업자들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뻔하지만 모른다 쳐도 정작 동네 사람을 위한 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204쪽, '힙지로'의 교훈

 

창신동 이야기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 <사계>가 떠올랐다. 근무지인 동대문과 가까워 관심과 공감이 남달랐다. 창신동 일대는 여전히 미싱이 멈추지 않는 1000개의 공장들이 있다지만 그 안은 그다지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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