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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자기계발] 라이징 스트롱 - 어떻게 더 강인하게 일어설 수 있는가

by 두목의진심 2017.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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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딛고 일어서고 싶다면 실패가 주는 감정적 여파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p19

 

"다양성"의 존중. 이 책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뒤늦게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말하는 경험적 논리가 무장되어야 하겠지만 포럼이나 세미나를 참석해보면 수많은 실험으로 무장한 이론적 실제 역시 가슴을 관통하는 무언가에 적잖게 고민한다. "나는 과연 옳은가?", "이 일을 하는 게 옳으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 "사명감이나 열정이 무장되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는 무너지진 않았지만 일어서지 못하고 웅숭그린 그런 어정쩡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이거 아니면 저거인 이분법적 태도가 옳지 않음을 알지만 현장에선 때때로 아니 솔직히 조금은 더 많이 그런 상황과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이용자든 동료든 누군가를 멀리하게 된다. 이 책은 삶의 불확실성과 취약성의 이야기이며, 또한 정면으로 마주 보는 힘을 준다. 분명 자기 계발서이지만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아들러의 심리학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연초부터 좋은 책을 읽었다.

 

"경기장 하면 항상 웅장한 모습이 떠오르지만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모든 순간, 모든 장소가 바로 경기장이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도 경기장이다. 직장에서 한 팀을 이끄는 것도 경기장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부딪치는 힘겨운 순간도 경기장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것도 틀림없는 경기장이다." p16

 

삶은 경기장이다.

삶은 경기장이고 이미 경기장 안으로 발을 디딘 사람은 넘어지더라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더라도 경기가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 내가 목이 부러지고 장애라는 경기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숱하게 넘어지고 일어나고 있지만 이 살벌한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갑자기 울컥하다.

 

얼마 전 블로그에 끄적거린 "공감능력 상실의 시대"에서 말했던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도 하고 있다. 누군가 아프다고 말하면 내가 더 아프다고 할 게 아니라 그 아픔을 나누라는 말. 함께 공감해주라는 말. 그저 아픈 건 아픈 거니까.

 

"공감은 한계가 없으며, 동정은 여덟 조각짜리 피자가 아니다. 공감과 동정을 실천한다고 해서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랑의 양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p31

 

감정 마주보기

살면서 불쑥불쑥 솟는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 본 적이 몇 번이 있을까. 울컥하는 내 감정조차 불편해서 보이지도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 깊은 가슴 저 밑바닥까지 밀어 처넣는다. 다시는 꺼내 보지 않을 것처럼. 그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이 아닐까. 타인의 감정부터 챙기는데 익숙하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울컥하고 눈물 바람이라도 하면 아내를 비롯해 아이들이 "아빠 또 운다"며 즐거워한다. 나는 슬픈 장면에 공감돼 눈물을 찔끔거리는데 그런 나를 보는 가족들은 우스워한다. 왜 남자는 울면 이리도 웃긴 사람이 되는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가족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사소한 감정의 변화 때문에 분노 비슷한 게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는데 이럴 땐 저자가 말하는 2단계를 건너뛰고 나도 바로 3단계로 넘어가 버린다. 이유도 없이 버럭 하거나 단념 혹은 무시를 하게 된다. 참 감정이란 녀석 마주보기 어렵다. 많이 부끄부끄 하게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설정하든 상관치 말라거나 그들의 성장과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잣대에 비추어 사람들을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p159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리더의 역할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짧은 단락을 읽으며 조직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소양을 모두 알아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해 게으르고 무능력하고 답답한 존재로 평가해 버리는 게 아닌 그들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해 주어야 한다는 말. 충분히 공감돼는 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자리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다른 자리로 옮겨 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는 충고다. 그들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지금 그렇게 힘을 내고 있으니까.

 

"자녀들 중에 유독 한 아이가 힘겨워하고  있을 때 부모가 그 자녀에게 집중하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많은 연구 참가자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느꼈던 비통함과 상실감을 이야기했다." p187

 

올인이 주는 상실감.

가정에 장애 아동이 한 명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 혹은 엄마는 그 아이에게 올인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그러다 보면 그 장애 아동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상실감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비통함으로 변질되고 가족은 와해될 수 있다.

 

그럼 그렇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장애 아동은 행복할까? 그런 기대와 희망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장애 아동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부모의 헌신을 외면할 수 없으니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가족 중에 누가 힘겨워한다면 온 가족이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하고 그 아픔을 오롯이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한 사람에게 올인하는 건 위험하다.

 

모든 걸 혼자 혹은 한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숙제처럼 여기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것들에 대한 마음을 열면 좀 수월해진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해라. 아직 세상은 그리 팍팍한 것만은 아니다.

 

"특권에 대해 충분히 배운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가 특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모두 배웠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불의에 주위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괴롭힘당하거나 해고당하거나 경찰 검문에 걸리거나 저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이 당하는 불의에 무관심한 것. 이것이 바로 특권의 정의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 특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권을 인정하고 불의에 어떤 행동을 취하려면 부단히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나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특권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내 싸움은 계속되었다." p210

 

특권의 무게

상위층에게만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 특권이 이처럼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마트의 시식코너에서 불거지다니. 좀 생뚱맞은 전개지만 이 생뚱맞은 특권의 자각은 나 또한 수치스럽게 한다. 정의에 목말라 하는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특권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극에 달하는 요즘. 광화문 앞 시위의 현장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 무리에 섞이지 않으면서 나는 특권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이 살을 애는 추위에 뜨거운 촛불을 밝히는 그들에게 모두 떠 넘기고 거리보다 추운 방 안에서 관조하는 것이다. 이런 나 역시 거리의 노숙자들의 눈을 마주할 수 있을까. 나는 사회복지사로 정의로운가에 대한 질문이 머리를 다시 채운다.

 

수치심,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크든 작든 기업이든 기관이든 조직의 리더라면 꼭 <9장. 실패 앞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의 앤드루 이야기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리더는 자신이 만드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고 그런 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알게 된다.

 

"밖을 바라보는 자는 꿈을 꾸고, 안을 들여다보는 자는 깨어난다." p304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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