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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자기계발] 메시 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by 두목의진심 2017.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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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보이면 일단 움켜쥐고 나중에 세세한 것을 살펴라."

 

<골든보이>라는 제패니메이션을 보면 인생 공부를 떠난 주인공이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해 허드렛일을 도와주다가 지저분해도 너무 지저분한 한 원화맨의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후에 주인공에게 벌어진 사태는 죽도록 얻어터지는 일이었다. 어지러움 속에 나름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 속에 자신의 업무 역량이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메시>를 읽으며 떠오른 장면이다. 그리고 딸아이의 방이 겹쳐졌다.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러운 딸아이의 방. 제발 치우라는 소릴 입에 달고 살았는데 녀석도 그 어지러움 속에 나름의 규칙이 있는 것일까?

 

<메시>는 약간의 혼란과 무질서를 수용할 때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다양성과 창조적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잡은 시기가 연말이기도 했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여서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충 읽거나 속독으로 읽지 않고 정독하다 보니 좀 일주일이 넘게 읽었다. 

 

어쩌면 결벽증에 가까운 현대인들의 '정리'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계기가 될까. 일반적으로 데스크톱에 잔뜩 늘어놓는 사람과 깔끔하게 폴더를 정리해 놓은 사람과의 차이에서 업무성과는 늘어놓은 쪽이 더 능률적이라는 주장이 다소 비논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사실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맞는 지적이다. 나 역시 폴더 정리를 한다고 해놓고 정작 파일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몰라 탐색기를 돌리고도 못 찾아낸 경우도 있다. 정리가 꼭 업무의 성과가 낮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높다고 볼 수도 없다.

 

혼돈과 혼란에서 새로운 창의적 발상이 시작된다는 말 자체가 새로운 발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새롭다. 1, 2차 세계대전의 독일 롬멜 장군의 활약상은 보지 않아도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로 재미있으며, 2017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등장한 트럼프의 완벽한 정치적 발언과 전술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책은 뭐랄까.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장르랄까. 아무튼 묘한 재미를 준다. 또한 긴장감 넘치는 직장 생활의 사례 역시 자극이 된다.

 

"결국 어떻게 분류를 하더라도 그러한 선택은 완벽할 수가 없다. 나중에 그 서류를 찾아야 할 때 여러 파일함을 뒤져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30

 

'인간이 기계의 알고리즘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주제는 이제는 다소 갸우뚱할 만큼 의심스럽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부분도 파고들지 않을까 싶어서다.(영화 <her>의 사만다를 기억해 보라.)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한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한 온라인 데이팅 프로그램 알고리즘의 불완전 성이나 능력 없는 직무자의 사례에서 보듯 몇 개의 인간적인(?) 질문들을 통한 직무능력 평가는 "과연 인간의 다양성을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임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부에서도 한창 직무능력이 개인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결과 지표라는 듯 방송이나 라디오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진정한 창조성, 자극, 인간성은 삶의 깔끔한 부분이 아니라 무질서한 부분에서 나온다." 62

 

"자동화 역설"을 보면 인간이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해 이성을 잃고 혼돈에 빠진다는 내용이 섬뜩하다. 에어 프랑스의 어이없는 혼돈으로 어처구니없게도 탑승객 228명 전원이 즉사했다는 사실은 "과연 우리는 자동화에 젖어있는 조종사들의 혼돈을 믿을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포함한 인류의 기계 의존도에 대한 경각심이 아닐까. 암튼 무서운 일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만으로 과연 거대한 문제가 발생될까 싶다. 하지만 기계의 오작동을 포함한 1%의 오류로 인한 문제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섬뜩하지 않은가.

 

"자동화시스템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 한다. 알고리즘이나 데이터베이스가 당신의 정보를 특정한 카테고리로 분류하면, 이 정보는 어떠한 논쟁이나 불확실성도 허용하지 않는 명확한 정의가 되어버린다." 93

 

"우리는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염려하지만, 진짜 염려해야 할 문제는 로봇에게 판단 능력을 빼앗기는 것이다." 99

 

책 내용은 점점 더 흥미로워지며 혼란스러운 어지러움으로 대변되는 부정적 의미는 어느새 통제의 부당함이나 즉흥성에 대한 긍정적 의미로 대체된다. 산만함으로 대변되는 집중력 부족은 대부분 주의산만이라는 낙인과 함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한데 이런 산만함 속에도 나름의 규칙과 창의적 결과가 생성된다는 이야기는 단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 과잉행동에 가까운 내 아들에겐 기적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저자는 창의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집중력이 낮다고 한다. 한데 이런 집중력 낮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고 하고 있다. 그동안 반대로 인식하고 살았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혼란과 무질서는 창의적인 기술과 결합할 때 강력한 결과를 낳는다." 262

 

획일화에 기초를 둔 통계 가능한, 측정 가능한 정보의 나열은 보건·의료 부분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한다는 이야기는 거의 충격에 가깝다. 좋은 의사와 그런 의사를 많이 보유한 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수술이 시급한, 다시 말하면 상태가 나쁜 환자를 내팽개쳐 두고 수술 후 예후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별로 상태가 나쁘지 않은 환자를 수술함으로 생존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통계적 방법이 동원되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운 일인가. 이런 제도적·정책적 근시안적인 방법들을 '터널비전(tunnel vision, 시야협착)'이라고 지적한다.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들을 포함한 이상은 좋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우리나라의 수많은 정책들이 이 터널비전이 아닌가 싶다. 단기적인 성과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고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뉴욕의 도시 재건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깨진 유리창 이론"이 과연 제대로 기능하는 도시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무질서한 도시로 탈바꿈 시키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내용은 그동안 알고 있던 성공적 도시 재건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히 과장된 이론일 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명확히 하고 있다.

 

도시의 기능적 부분에 우선하여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와 다소 무질서해 보이는 도시와의 상관관계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인위적인 계획도시의 편리성과 다소 무질서하지만 건강미 넘치는 도시의 기능성을 두고 과연 나는 어느 도시를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메시>는 군사, 보건, 의료, 금융 등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 깔끔하고 획일화된 정보와 혼돈에 가까운 어지럽게 널린 정보의 비교를 통해 "과연 인간을 데이터나 수치로 통제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또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동질성'에 대한 이야기는, 비슷한 성향과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경향이 높다는 지적은 낯설고 새로운 사람에 거부감 내지는 불편함을 느끼는 요즘의 나와 많이 닮아 있다.

 

어쨌거나 방대하고 세밀한 내용들로 채워진 이 책이 지루하기는커녕 왜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읽어보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2017년 첫 추천하는 책이다.

 

"네트워킹 이벤트나 단합 행사에서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술을 권하거나 바보 같은 게임을 시키는 것보다는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 좋다. 협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411

 

오타가 보였다.

46쪽 7째 줄. 이용려고 → 이용하려고.

249쪽 6째 줄. 리탈린 덕분이 → 리탈린 덕분에.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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